Page 37 - 코리아카코_2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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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척의 길 ( ~1997)
코리아카코 석철기 대표의 결심을 통해 시작되었고 그의 노력으로
성장하고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코리아카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석철기 대표에 관한
이야기이다. 석철기 대표의 결심을 통해 코리아카코가 시작되었고 그의 노력
으로 성장하고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석철기 대표가 발파해체를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롯데
건설에서 일하던 1980년대 중반의 일이다. 명동에 있던 3층 높이의 산업은행
해체공사를 보면서 고등학교 때 보았던 영화에서 고층빌딩이 발파해체로
무너지는 모습을 떠올렸던 것이다.
석철기 대표는 곧바로 발파해체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하였지만, 자료를
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발파해체에 관하여 세계적으로 선두를 달리는
미국이나 영국의 업체들은 모두 가족회사로 노하우를 외부에 반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무렵에 천우신조의 기회가 생겼다. 일본의 쯔쿠바 박람
회장을 1986년 3월 6일에 미국의 대표적인 발파해체 업체인 CDI가 발파해체
요코하마 국립대학 세미나실
하는데 실패하여 건물이 완전히 내려앉지 않은 것이다. 이에 일본에서는 발파
해체 연구에 대한 움직임이 생기면서 발파해체 연구단이 생기게 되었고 일본
카코가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본카코의 전신은 중국화약으로 2차대전
이후 폭탄을 해체하거나 발파를 하는 업체였다. 석 대표는 요코하마 국립대
학원 연구원 시절 발파해체 공동연구단에 참여할 기회가 되어, 오늘날의 코리아
카코가 탄생할 수 있었다.
연구소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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