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코리아카코_20년사
P. 41
2 도전의 길 (1997~2004)
창업 초기에는 사업을 확장하고 연구개발을 하기 위한 자본금이
필요했지만,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였으므로 어려움이 많았다.
1997년 기세 좋게 코리아카코를 창립하였지만 2004년까지는 사업을 유지
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게다가 그해에는 국가적인 악재까지 터졌는데 그것
이 바로 IMF 대란이었다.
코리아카코는 일본카코에서 남기고 간 사무실에서 시작했다. 일본카코가
철수하면서 차량과 사택, 그리고 사무실 등을 인수하였는데 당시 시세로 3억
원이 조금 넘었다. 석철기 대표는 일본카코와 협의해서 이 금액을 추후 몇 년
간 나누어 갚기로 하고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1997년 창업 첫해에는 직원이 3명이었다. 광진교 기초발파공사부터 한강 인공
섬공사도 했는데 매출이 5,500만원이었다. 1998년에는 진주 남강댐부터
상암동, 부산 시티코아 등 공사를 진행하면서 8억5,000만원의 매출을 냈다.
석철기 대표는 일본에서 공부할 때도 힘들었지만, 코리아카코 설립 초기에도
운영자금이 없어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다. 사업 초기라 설비를 늘리고 연구
원유시추기지발파(일본)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자본금이 필요했는데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상태라서
힘든 일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코리아카코 초기부터 함께해온 직원들은 이런 어려움을 함께 겪으면서 성장
해왔다. 김래회 전무는 1998년에 신입사원일 때 분당선 왕십리-분당 간 터널
공사를 혼자 진행했다. 지반이 청석으로 되어있어서 난공사였고 공사 기간이
짧아서 주야간 작업을 해야 했는데 묵묵히 견뎌냈다. 구조물 발파를 전공
했는데 전공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 창업초기 기초구조물 발파현장
KOREA KACOH 39